2012년 8월 2일 목요일

the Great Journey


The Great Journey
Henri J. M. Nouwen

From the moment we claim the truth of being the Beloved, we are faced with the call to become who we are. Becoming the Beloved is the great spiritual journey we have to make.
As long as "being the Beloved" is little more than a beautiful thought or a lofty idea..., nothing really changes. What is required is to become the Beloved in the commonplaces of my daily existence and, bit by bit, to close the gap that exists between what I know myself to be and the countless specific realities of everyday life.

Source: Life of the Beloved

나의 존재는 멈춰있지 않다. 과거로부터의 규정이 아무리 거대하고 크다 할지라도, 오늘 나의 존재는 여전히 무언가를 향해 나가가고 있다. 사랑받는 이가 되는 길, 그 위대한 여정에서 오늘 나는 쉼없이 변화한다. 
아버지.... 그 두려운 이름, 그렇게 규정된 나를 바라보는 지금의 나. 그 둘 사이의 거리감이 나를 이끄신 성령님의 은총이다.

한재경

2012년 7월 27일 금요일

케서린 제퍼츠 쇼리 주교의 Gathering at God’s Table: The Meaning of Mission in the Feast of Faith(가제: 하느님의 잔칫상에 모여-신앙의 축제 안에서 선교의 의미)





미국성공회의 의장주교 케서린 제퍼츠 쇼리의 저서 <Gathering at God’s Table: The Meaning of Mission in the Feast of Faith>(이하 Gathering at God’s Table) 소개하기에 앞서 지난 7 5일부터 12,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77 미국성공회 전국의회을 언급하고자 한다. 쇼리 주교가 자신의 저서에서 소개하는 다섯 가지 선교 지표”(Five Marks of Mission) 실질적 결과물이 전국의회에서 나타난 까닭이다.


혹자는 이번 전국의회에서 통과된 동성간 시민결합에 대한 축복 예식과 트랜스젠더의 사제 서품 등에 관해 미국성공회가 세계성공회의 분열을 초래한다고 생각할 있다. 하지만 미국성공회의 향후 3년간(2013-15) 활동이 반영된 예산안을 살펴보자. 이번 예산안은 세계성공회 협의회(Anglican Consultative Council)에서 1986년부터 1990년까지 전개한 다섯 가지 선교 지표 바탕으로 짜여졌다. 다시 말해, 미국성공회가 세계성공회의 선교에 대한 신학적 지표를 어느 교회보다 적극적으로 따르고 있음을 증명한다. 예수께서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하신 말씀을 고려할 선교가 미국성공회의 마음 한가운데 있다고 해석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미국성공회의 이런 움직임은 선교에 올인한 교회를 향한 연대의 발걸음이며 아직 망설이고 있는 교회에겐 초대의 손길이다.


다섯 가지 선교 지표 기준으로 계획된 이번 예산안과 관련해 주목할 점이 한가지 있다. 바로 전국의회에서 채택된 예산안이 지난 6 21 쇼리 주교가 제출한 예산안을 근거로 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의장주교가 예산안을 직접 제출한 것은 이례적인데, 그만큼 쇼리 주교의 선교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음을 반증한다고 있다. , 수천만달러의 액수가 반영되는 쇼리 주교의 예산안은 손익을 따지는 단순한 회계 보고서가 아니라 다섯 가지 선교 지표 따라 숫자로 선교 보고서인 셈이다.

그렇다면 쇼리 주교가 <Gathering at God’s Table>에서 주요 논제로 다룬 다섯 가지 선교 지표 무엇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다섯 가지 선교 지표 세계성공회 협의회가 선교에 관해4 동안 연구한 열매다. 이는 1999, 세계성공회 선교와 복음화 위원회(MISSIO) 저마다 다른 지역 교회의 상황을 숙고해 재조명했다:

  1. 하느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2. 새신자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며 양육하기
  3. 이웃의 필요에 사랑으로 섬기며 응답하기
  4. 불의한 사회 구조 변혁하기
  5. 창조 질서의 보전과 지구의 생명을 지키고 새롭게 하도록 노력하기

<Gathering at God’s Table> 다섯 가지 선교 지표에 따라 모두 다섯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쇼리 주교는 장마다 자신의 신학적 성찰을 나누며 선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는다. 또한 꼭지마다 다섯 가지 선교 지표를 따라 살고 있는지 확인할 있는 질문을 던지는데 개인과 교회가 반드시 성찰해야 부분이다.

하느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라

쇼리 주교는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된 참세상에 관한 하느님의 오랜 꿈을 나누는 하느님나라의 복음 선포라고 말한다. 그래서 참된 복음 선포는 하느님과 이웃과 세상이 올바른 관계 안에서 사는 포함한다. 하느님이 꿈꾸는 세상, 하느님나라에선 아픈 이들이 보살핌과 치유를 받고 누구도 배고프거나 전쟁에 몰두하지 않으며 모두가 평화와 정의 가운데 함께 살아간다. 이것은 환대(hospitality) 영성이며, 바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샬롬의 길을 보여주신다.

이러한 쇼리 주교의 복음 선포에 대한 이해는 개종(proselytization) 개념을 넘어선다. 말로만 하는 복음 선포가 아니라 행함이 함께 수반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도래한 하느님의 통치의 표지와 맛보기와 도구로서 선교의 사람 되어야 한다.

새신자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며 양육하라

선교의 번째 지표인 새신자 교육과 세례와 양육은 샬롬의 세상을 함께 구축하고 이웃을 올바른 관계로 초대하는 예수의 제자를 길러내는 이다. 여기서 새신자 교육이란 단순히 교리를 주입하는 아니다. 신자 자신이 하느님의 현존을 안과 밖에서 발견하도록 돕는 이다. 신앙 공동체는 신자들이 성사적(sacramental) 시각으로 평범한 일상 살아계신 하느님의 신비를 더욱 깊이 바라볼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결국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신비를 향한 여정이다. 이런 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신앙의 여정 가운데 있다. 여정을 가는데 있어 새로운 공동체와 리더가 절실히 필요하다. 쇼리 주교는 세례에서 리더십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세례는 창조이자 빛의 자녀가 되는 이다. 우리는 세례를 참예함으로 그리스도의 빛에 초대받고 빛이 필요한 세상으로 나아간다.

이웃의 필요에 사랑으로 섬기며 응답하라

오랫동안 자선사업”(corporal works of mercy)으로 불린 번째 선교의 지표는 속에서 실천하는 이웃 사랑이다. 쇼리 주교는 이웃 사랑이란 길가에 쓰러져 자비의 손길이 필요한 이를 고귀한 인간으로 인식한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나아가 우리가 예수께서 직접 행하신 먹이고 치유하는 일에 동참하면서 우리 주위에 현존하는 고통에 대한 응답한다.

쇼리 주교는 당신이 속한 공동체가 부정한 의료 시스템과 조직적 불의, 그리고 폭력 간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질문을 몸소 해결하려는 이들은 하느님께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만을 간구하지 않는다. 그들 자신이 쓰러진 이웃에게 몸소 하느님의 자비가 있도록 기도한다. “주여, 우리가 이웃에게 당신의 자비가 되게 하소서!”

불의한 사회 구조를 변혁하라

사회변혁을 위한 번째 선교의 지표는 예언자적이고 정치적이다.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마태오 21:12),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라는 비유(마르코 12:17), 과부의 헌금(루가 21:1-4), 포도원 일꾼과 품삯(마태오 20) 성서 본문을 살펴보자. 예수의 사역은 정치와 종교을 나눠 어느 곳에서 이뤄진 아니다. 정치를 비롯해 종교, 경제가 교차되는 삶의 복판에서 일어났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런 정치성을 지닌 네번 선교 지표를 세속적이거나 종교인들에게 너무 위험한 간주한다. 보수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한국의 상황 또한 예외가 아니다. 쇼리 주교는 이런 시각에 대해 평화와 정의의 구현이 그리스도교 선교의 근본을 이룬다 역설한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절망, 무관심, 증오, 가난, 두려움, 기아라는 악을 몰아내고 병폐로 가득한 세상을 치유하도록 권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공동체를 비롯해 국가와 세계를 위협하는 불의는 무엇인가.

창조 질서의 보전과 지구의 생명을 지키고 새롭게 하도록 노력하라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창세기 1 28절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자연 지배와 파괴를 정당화시켰다. 정복”(dominion)이란 단어를 소유나 사사로운 목적을 성취하라는 뜻으로 곡해했다. 쇼리 주교는 다섯 번째 선교의 지표가 오랫동안 등한시된 부분이라고 지적하며 정복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집을 뜻하는 라틴어 도무스”(domus)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지구의 정복자(혹은 파괴자) 아니라 지구라는 집의 거주자(household)로서 집의 살림살이(housekeeping) 책임져야 한다.

선교의 하느님, 하느님의 선교

지금까지 쇼리 주교가 자신의 저서 <Gathering at God’s Table>에서 주요 논제로 다룬 다섯 가지 선교 지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세계성공회가 이해하는 선교는 단순한 포교나 개종에 국한되지 않는다. 선교는 이웃 사랑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며 이는 서로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관한 실천적 응답이다.

쇼리 주교는 책의 서문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하느님의 선교를 위해 존재한다.” , 선교란 하느님의 교회가 부수적으로 해야 목록 중의 하나가 아니다. 바로 선교의 하느님 당신의 선교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오셨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서 하느님의 사랑이 감춰진 곳으로 보내신다

2012년 6월 26일 화요일

당신은 행복한가?/ 장미선여성싸롱 6-6 -12 방송분


당신은 행복한가, 달라이 라마-하워드 커틀러 공저, 류시화역, 문학의숲 (6-6-12)

오늘 소개할 첫 번째 책은 달라이 라마와 미국 정신과 의사인 하워드 커틀러의 대화를 담은 책, 당신은 <행복한가>입니다.

가장 불행한 자리에서 행복과 용서를 퍼 올린 우리 시대의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 티벳의 불행이 소개되는데요, 중국이 1950년 티벳을 침공하고, 1959년 티벳 인들의 무장봉기가 일어나죠. 극심한 중국의 탄압이 자행되는데, 티벳 승려 10만 명이 처형되고, 6천 개의 티벳 사원이 파괴됩니다. 탄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원이 있던 자리에 돼지우리, 마구간, 감옥, 창고, 도살장을 만들어 티벳의 정신을 짓밟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 모든 폭력과 분노의 한 복판에 달라이 라마가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고 합니다. “당신은 중국인을 미워하는가?”

달라이 라마가 잉태하고 낳은 용서와 행복은 이처럼 살아있는 지혜입니다. 폭력의 가장 큰 피해자 이지만, 비폭력의 힘을 끝까지 믿는 지혜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무엇보다 산이나 수도원에서 명상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아니라, 억울하고 분노하는 삶의 한복판에서 건져낸 지혜입니다.

우린 불행하다는 느낌 속에서 행복을 그리워합니다. 그래, 난 지금 행복해! 이렇게 행복선언을 할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은 거 같습니다.

행복이야말로 사람이 추구해야 할 근원적인 목표라고 보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의 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라는 주제로 엮어낸 두 사람의 대화입니다. 달라이 라마가 내 놓는 지혜를 정신과 의사인 하워드가 과학적 검증을 통해 뒷받침하는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예를 들어, 달라이 라마가 마음 수행을 통해서 긍정적인 마음 상태를 키워서 부정적인 마음의 상태인 파괴적인 감정과 번뇌를 물리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내와 관용이 분노의 해독제가 되고, 자비와 친절이 미움의 해독제이고, 만족감과 소박한 보람이 탐욕과 욕심의 해독제가 된다고 말합니다(275).

하워드는 미시간 대학에서 있었던 심리실험을 제시하며 달라이 라마의 깨달음을 과학적으로 지지합니다. 동일한 스트레스를 준 사람들을 네 그룹으로 나눠서 동영상을 보여 줬는데요, 즐거운 동영상을 본 그룹이 슬픈 동영상을 본 그룹보다, 스트레스 영향으로부터 더 빨리 회복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불행을 느끼게 하는 이유 중에 공동체의 결여를 이야기합니다. 행복의 그물망을 확보하는 게 행복의 자리로 들어가는 중요한 토대라고 합니다.

하워드는 여러 실험을 통해서 이를 증명합니다. 한 단체에 가입했을 때, 사망확률이 50%로 줄고요, 두 개의 단체에 가입했을 때는 사망률이 4분의 1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공동체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 둘 다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출발점은 개인의 행복에 있다고 하네요. 개인의 행복이 공동체 전체의 그물망에 행복을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행복의 그물망 구축이 중요합니다

개인의 행복이 옆집 사람이 행복해질 가능성을 34퍼센트까지 높여준다고 합니다. 1마일 이내에 사는 친구가 행복해질 가능성도 25퍼센트까지 높여줍니다. 놀라운 행복의 전염성입니다. 전염된 행복의 영향은 1년까지 지속된다고 합니다.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자비를 실천하세요.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자비를 실천하세요. 자비는 행복의 진정한 원천입니다. 자비, 우리 식으로는 '사랑'이요, '긍휼'에 하나님 나라의 입구가 있습니다. 지금 제가 느끼는 고통을 보면서, 사랑을 주기보다 받기 바라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봐야 겠네요. ㅎㅎ

2012년 5월 26일 토요일

바벨탑과 떠돌이_서평


목사님 새 책에 대한 서평이 나왔습니다.
우리 함께 토론했던 바울, 대망공동체도 포함이 됐군요.
너무 늦어서 다음 책에 게재될 줄 알았는데 말이죠?

민주화 운동, 민중신학 등 "기존의 질서"(?)에도
일침을 가하신 것 같아서 흥미롭습니다.
(서평 쓴 기자의 낚시일 것 같은 느낌도 들구요)


단물 빨린 떠돌이들이여, 
양극화 바벨탑 허물라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33615.html


2012년 5월 12일 토요일

깬 정신



  나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당신은 누구십니까?
  세상의 많은 질문 중에서 답하기가 제일 어려운 질문이 있다면 바로 이런 질문이 아닐까? 합니다.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대답하려고 하면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바로 이런 질문입니다.
  대답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나라는 존재가 혹은 우리라는 존재가 어떤 특정한 단어로 답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고백했기에 분명하고 확실한 주님의 제자가 되었던 것처럼 나에 대해서, 또 우리에게 대해서 그렇게 대답하고 고백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의 길도 베드로의 발걸음처럼 가벼운 걸음걸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고백이 없습니다. 또 확실한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가는 길이 꼬불꼬불 산비탈이고, 그 길마저 휘청거리며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한 번이라도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약 한 번이라도 그런 생각 없이 살아온 인생이라면 그건 인생(人生)이 아니라 야생의 들짐승의 하루하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육체를 향해서 "너는 나무나 돌처럼 물질이다. 그리고 나는 정신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홍해바다가 갈라지듯 육체와 정신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쪼개짐이야말로 진정한 출애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쪼개짐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땅에서 영원히 노예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인생도 이런 쪼개짐이 없다면 육체의 노예가 되어 한평생을 살다가 그렇게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홍해바다가 쪼개져 노예였던 그들이 참 자유인이 되었듯이 우리의 육체와 정신이 갈라져서 진정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육체의 노예가 아닌 진정한 자유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아무리 바쁜 세상이라 해도 인간은 정신없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정신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정신이 있다는 것은 정신이 깨어 있다는 것이고, 그게 바로 깬 정신입니다.
  깬 정신의 사람은 더 이상 육체의 노예가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오늘은 그런 자유인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正午-

2012년 5월 8일 화요일

God is a God of the present

God is a God of the present. God is always in the moment, be that moment hard or easy, joyful or painful.
- H. Nouwen

과거의 경험 속에 산재해 있는 죄책감이나 미래에 대한 온갖 두려움에 오늘 이 순간의 현재를 잃고 있을 때,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방식이 오늘 이 '순간moment'이라고 본다면, 나의 존재방식이 오늘 이 순간을 살아 낼 수 있을 때에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리라. 나의 매 순간은 그 자체로 현실이지 못하고, 언제나 '했어야 했던' 일들에 대한 죄책감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준비되지 못한 두려움에 잠식당하며, 현재의 순간들은 사라진다. 대부분 나의 순간은 내 것이 아니며 사로잡힌 포로다.


내가 가장 생동감있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주일예배 직전이다. 모든 감각이 살아나며 나는 그대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물론 painful한 순간이다.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든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야기이다. 그 고통의 순간에 매몰되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키면서 동시에 있음 그대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뭐라 말씀하시는가?

2012년 5월 5일 토요일

아하! 의 세상


  오늘은 4월 29일입니다. 5월을 향해 이틀밖에 남지 않은 날입니다. 예년 같으면 봄이 개 눈 감추듯 사라지고 초여름이 성큼 다가왔다고 할 만한 계절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춥습니까?
  요즘은 장롱 깊숙이 넣어 두었던 겨울옷을 꺼내 아침 저녁, 열심히 입고 다닐 정도로 어깨를 움츠리게 합니다.
  
  엊그제 5월이 다된 4월의 마지막이 왜 이렇게 추운지 그 이유를 달력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달력을 자세히 보니 분명 4월의 마지막인데, 큰 숫자 밑에 아주 작게 써있는 숫자, 바로 음력을 보니 아직 4월의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4월29일이 아니라 3월 9일이었습니다.

  양력은 태양을 기준으로 만든 달력이지요.
  농사를 짓는 농부들, 또 고기를 잡는 어부들,
  자연을 기반으로 일을 하는 분들은 양력 달력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달을 기준으로 만든 음력 달력입니다.


  그런데 양력과 음력은 약간의 차이가 있어서 4년에 한 번 윤달이란 것을 만들어 두 개를 계속 맞춰 나가고 있습니다. 바로 올 해가 3월이 두 번이 있는 윤달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그렇게 된 이유들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면 그 이유들을 발견하게 되고, “아하”라는 감탄을 지어냅니다.
  그런데 세상이 너무나 바쁘다 보니 가만히 보질 않습니다. 그냥 지나칩니다. 그러면서 “왜 이래”라고 하며 짜증을 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아하”의 세상입니다.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너무나도 아름답게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느낄 수 없듯이 가만히 보고 듣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보고 듣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아하”라고 하면서 놀람과 경탄의 삶을 삶게 됩니다.


  하루를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아하”의 감탄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왜 이래”라고 하며 원망과 짜증의 소리를 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주신 이 아름다운 세상! 날마다 “아하”의 감탄사를 터트리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正午-
                                                     (새하늘교회 주보 칼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