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the moment we claim the truth of being the Beloved, we are faced with the call to become who we are. Becoming the Beloved is the great spiritual journey we have to make.
As long as "being the Beloved" is little more than a beautiful thought or a lofty idea..., nothing really changes. What is required is to become the Beloved in the commonplaces of my daily existence and, bit by bit, to close the gap that exists between what I know myself to be and the countless specific realities of everyday life.
Source: Life of the Beloved
나의 존재는 멈춰있지 않다. 과거로부터의 규정이 아무리 거대하고 크다 할지라도, 오늘 나의 존재는 여전히 무언가를 향해 나가가고 있다. 사랑받는 이가 되는 길, 그 위대한 여정에서 오늘 나는 쉼없이 변화한다.
아버지.... 그 두려운 이름, 그렇게 규정된 나를 바라보는 지금의 나. 그 둘 사이의 거리감이 나를 이끄신 성령님의 은총이다.
미국성공회의의장주교케서린제퍼츠쇼리의저서<Gathering at
God’s Table: The Meaning of Mission in the Feast of Faith>(이하Gathering at God’s Table)를소개하기에앞서지난 7월 5일부터 12일, 인디애나폴리스에서열린제77차미국성공회전국의회을언급하고자한다. 쇼리주교가자신의저서에서소개하는“다섯가지선교지표”(Five Marks of Mission)의실질적결과물이전국의회에서나타난까닭이다.
“다섯가지선교지표”를기준으로계획된이번예산안과관련해주목할점이한가지더있다. 바로전국의회에서채택된이예산안이지난 6월 21일쇼리주교가제출한예산안을근거로했다는사실이다. 여기서의장주교가예산안을직접제출한것은이례적인데, 그만큼쇼리주교의선교에대한의지가확고했음을반증한다고볼수있다. 즉, 수천만달러의액수가반영되는쇼리주교의예산안은손익을따지는단순한회계보고서가아니라“다섯가지선교지표”를따라숫자로쓴선교보고서인셈이다.
그렇다면쇼리주교가<Gathering at God’s Table>에서주요논제로다룬“다섯가지선교지표”는무엇인가. 앞서언급했듯이, “다섯가지선교지표”는세계성공회협의회가선교에관해4년동안연구한열매다. 이는1999년, 세계성공회선교와복음화위원회(MISSIO)가저마다다른지역교회의상황을숙고해재조명했다:
하느님나라의복음을선포하기
새신자를가르치고세례를주며양육하기
이웃의필요에사랑으로섬기며응답하기
불의한사회구조변혁하기
창조질서의보전과지구의생명을지키고새롭게하도록노력하기
<Gathering at God’s Table>은다섯가지선교지표에따라모두다섯장으로이루어져있다. 쇼리주교는각장마다자신의신학적성찰을나누며선교에대한깊은이해를돕는다. 또한각꼭지마다다섯가지선교지표를따라살고있는지확인할수있는질문을던지는데개인과교회가반드시성찰해야할부분이다.
오랫동안“자선사업”(corporal works of mercy)으로불린세번째선교의지표는삶속에서실천하는이웃사랑이다. 쇼리주교는이웃사랑이란“길가에쓰러져자비의손길이필요한이를고귀한인간으로인식한다는의미”라고말한다. 더나아가“우리가예수께서직접행하신먹이고치유하는일에동참하면서우리주위에현존하는고통에대한응답”한다.
오늘 소개할 첫 번째 책은 달라이 라마와 미국 정신과 의사인 하워드 커틀러의 대화를 담은 책, 당신은 <행복한가>입니다.
가장 불행한 자리에서 행복과
용서를 퍼 올린 우리 시대의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 티벳의 불행이 소개되는데요, 중국이 1950년 티벳을 침공하고,
1959년 티벳 인들의 무장봉기가 일어나죠. 극심한 중국의 탄압이 자행되는데, 티벳 승려 10만 명이 처형되고,
6천 개의 티벳 사원이 파괴됩니다. 탄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원이 있던 자리에 돼지우리, 마구간, 감옥, 창고, 도살장을
만들어 티벳의 정신을 짓밟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 모든 폭력과 분노의 한 복판에 달라이 라마가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고 합니다. “당신은 중국인을 미워하는가?”
달라이 라마가 잉태하고 낳은 ‘용서와 행복’은 이처럼 살아있는 지혜입니다. 폭력의 가장 큰 피해자 이지만, 비폭력의 힘을 끝까지 믿는 지혜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무엇보다
산이나 수도원에서 명상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아니라, 억울하고 분노하는 삶의 한복판에서 건져낸 지혜입니다.
우린 불행하다는 느낌 속에서 행복을 그리워합니다. 그래, 난 지금 행복해!이렇게 행복선언을 할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은 거 같습니다.
행복이야말로 사람이 추구해야 할 근원적인 목표라고 보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의 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라는 주제로 엮어낸 두 사람의 대화입니다. 달라이 라마가 내 놓는
지혜를 정신과 의사인 하워드가 과학적 검증을 통해 뒷받침하는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예를 들어, 달라이 라마가 마음 수행을 통해서 긍정적인 마음 상태를
키워서 부정적인 마음의 상태인 파괴적인 감정과 번뇌를 물리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내와 관용이 분노의
해독제가 되고, 자비와 친절이 미움의 해독제이고, 만족감과
소박한 보람이 탐욕과 욕심의 해독제가 된다고 말합니다(275쪽).
하워드는 미시간 대학에서 있었던 심리실험을 제시하며 달라이 라마의 깨달음을 과학적으로 지지합니다. 동일한 스트레스를 준 사람들을 네 그룹으로 나눠서 동영상을 보여 줬는데요, 즐거운
동영상을 본 그룹이 슬픈 동영상을 본 그룹보다, 스트레스 영향으로부터 더 빨리 회복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불행을 느끼게 하는 이유 중에 공동체의 결여를 이야기합니다. 행복의
그물망을 확보하는 게 행복의 자리로 들어가는 중요한 토대라고 합니다.
하워드는 여러 실험을 통해서 이를 증명합니다. 한 단체에 가입했을
때, 사망확률이 50%로 줄고요, 두 개의 단체에 가입했을 때는 사망률이 4분의 1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공동체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 둘 다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출발점은 개인의 행복에 있다고 하네요. 개인의 행복이 공동체 전체의 그물망에 행복을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행복의 그물망 구축이 중요합니다.
개인의 행복이 옆집 사람이
행복해질 가능성을 34퍼센트까지 높여준다고 합니다. 1마일
이내에 사는 친구가 행복해질 가능성도 25퍼센트까지 높여줍니다. 놀라운
행복의 전염성입니다. 전염된 행복의 영향은 1년까지 지속된다고
합니다.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자비를 실천하세요.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자비를 실천하세요. 자비는 행복의 진정한 원천입니다. 자비, 우리 식으로는 '사랑'이요, '긍휼'에 하나님 나라의 입구가 있습니다. 지금 제가 느끼는 고통을 보면서, 사랑을 주기보다 받기 바라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봐야 겠네요. ㅎㅎ
세상의 많은 질문 중에서 답하기가 제일 어려운 질문이 있다면 바로 이런 질문이 아닐까? 합니다.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대답하려고 하면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바로 이런 질문입니다.
대답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나라는 존재가 혹은 우리라는 존재가 어떤 특정한 단어로 답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고백했기에 분명하고 확실한 주님의 제자가 되었던 것처럼 나에 대해서, 또 우리에게 대해서 그렇게 대답하고 고백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의 길도 베드로의 발걸음처럼 가벼운 걸음걸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고백이 없습니다. 또 확실한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가는 길이 꼬불꼬불 산비탈이고, 그 길마저 휘청거리며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한 번이라도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약 한 번이라도 그런 생각 없이 살아온 인생이라면 그건 인생(人生)이 아니라 야생의 들짐승의 하루하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육체를 향해서 "너는 나무나 돌처럼 물질이다. 그리고 나는 정신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홍해바다가 갈라지듯 육체와 정신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쪼개짐이야말로 진정한 출애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쪼개짐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땅에서 영원히 노예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인생도 이런 쪼개짐이 없다면 육체의 노예가 되어 한평생을 살다가 그렇게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홍해바다가 쪼개져 노예였던 그들이 참 자유인이 되었듯이 우리의 육체와 정신이 갈라져서 진정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육체의 노예가 아닌 진정한 자유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아무리 바쁜 세상이라 해도 인간은 정신없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정신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정신이 있다는 것은 정신이 깨어 있다는 것이고, 그게 바로 깬 정신입니다.
깬 정신의 사람은 더 이상 육체의 노예가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오늘은 그런 자유인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正午-
God is a God of the present. God is always in the moment, be that moment hard or easy, joyful or painful. - H. Nouwen
과거의 경험 속에 산재해 있는 죄책감이나 미래에 대한 온갖 두려움에 오늘 이 순간의 현재를 잃고 있을 때,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방식이 오늘 이 '순간moment'이라고 본다면, 나의 존재방식이 오늘 이 순간을 살아 낼 수 있을 때에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리라. 나의 매 순간은 그 자체로 현실이지 못하고, 언제나 '했어야 했던' 일들에 대한 죄책감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준비되지 못한 두려움에 잠식당하며, 현재의 순간들은 사라진다. 대부분 나의 순간은 내 것이 아니며 사로잡힌 포로다.
내가 가장 생동감있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주일예배 직전이다. 모든 감각이 살아나며 나는 그대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물론 painful한 순간이다.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든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야기이다. 그 고통의 순간에 매몰되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키면서 동시에 있음 그대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뭐라 말씀하시는가?
오늘은 4월 29일입니다. 5월을 향해 이틀밖에 남지 않은 날입니다. 예년 같으면 봄이 개 눈 감추듯 사라지고 초여름이 성큼 다가왔다고 할 만한 계절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춥습니까?
요즘은 장롱 깊숙이 넣어 두었던 겨울옷을 꺼내 아침 저녁, 열심히 입고 다닐 정도로 어깨를 움츠리게 합니다.
엊그제 5월이 다된 4월의 마지막이 왜 이렇게 추운지 그 이유를 달력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달력을 자세히 보니 분명 4월의 마지막인데, 큰 숫자 밑에 아주 작게 써있는 숫자, 바로 음력을 보니 아직 4월의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4월29일이 아니라 3월 9일이었습니다.
양력은 태양을 기준으로 만든 달력이지요.
농사를 짓는 농부들, 또 고기를 잡는 어부들,
자연을 기반으로 일을 하는 분들은 양력 달력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달을 기준으로 만든 음력 달력입니다.
그런데 양력과 음력은 약간의 차이가 있어서 4년에 한 번 윤달이란 것을 만들어 두 개를 계속 맞춰 나가고 있습니다. 바로 올 해가 3월이 두 번이 있는 윤달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그렇게 된 이유들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면 그 이유들을 발견하게 되고, “아하”라는 감탄을 지어냅니다.
그런데 세상이 너무나 바쁘다 보니 가만히 보질 않습니다. 그냥 지나칩니다. 그러면서 “왜 이래”라고 하며 짜증을 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아하”의 세상입니다.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너무나도 아름답게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느낄 수 없듯이 가만히 보고 듣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보고 듣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아하”라고 하면서 놀람과 경탄의 삶을 삶게 됩니다.
하루를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아하”의 감탄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왜 이래”라고 하며 원망과 짜증의 소리를 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주신 이 아름다운 세상! 날마다 “아하”의 감탄사를 터트리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正午- (새하늘교회 주보 칼럼에서)